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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사망
현대사를 바꾼 변명…고문치사 은폐하려다 되려 ‘역풍’
 
박란희 기자 기사입력  2018/07/09 [09:58]

1987년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을 때 단순 쇼크사로 은폐를 시도하던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이 지난 6일 오후 11시 40분께 노환으로 숨졌다. 향년 86세.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3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강 전 본부장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안동사범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6·25에 참전했다. 이후 경찰에 들어가 1986년 1월 제10대 치안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이듬해인 1987년 1월 민주화열기가 뜨거워질 무렵 서울대학생인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가 끝내 숨졌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밝혀졌다.
 


강 전 본부장은 당시 박 열사의 사인이 ‘목 부위 압박에 따른 질식사’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소견에도 불구하고, 언론 발표에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거짓 발표를 해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사인을 바꾸기 위해 부검의까지 압박한 사실이 밝혀지며 강 전 본부장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1993년 유죄가 확정됐다.
 
강 전 본부장의 언론 발표는 당시 세간의 여론의 조롱을 받았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박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잇따랐고, 민주화 요구 목소리도 거세졌다. 이 사건은 결국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촉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5공화국 몰락의 계기이며, 동시에 한국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 됐다.
 
1993년 7월 27일 대법원은 강 전 본부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내렸다. 고문을 은폐하려는 경찰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이 컸다.
 
강 전본부장은 사건 이후 경찰 내부에서도 행방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왔다. 그는 가족장(葬)으로 삶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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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09 [09:58]  최종편집: ⓒ NBS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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