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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巨人 김종필 전 총리 별세
근대 한국 정치사의 산 증인
 
박란희 기자 기사입력  2018/06/24 [21:40]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불리며 근대 한국정치를 이끌어온 거목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를 도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박정희의 두뇌’로 불릴 정도로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동시에 국가 운영의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김 전 총리는 중앙정보부장, 민주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등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박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계속된 견제로 대권을 잡지는 못했다.
 
전두환의 5공 정권을 지나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시기 이후 또다시 김 전 총리는 역사에 재등장 했다.
 


신민주공화당 총재였던 그는 1990년 1월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함께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선언했고, 그 결과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김 전 총리는 민자당 최고위원이 됐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 됐다. 하지만 민자당에서 정책 이견 끝에 그는 탈당을 결행했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는 기염을 토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1997년 12월에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DJP연합을 이뤄 대선승리를 이끌어냈다.
 
‘보수의 상징’으로 꼽히던 김 전 총리가 충청표를 대거 이끌어온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보수의 대표주자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끌어냈다.
 
그를 평가하는 목소리 중에는 공과 과를 같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수 많은 인사들을 탄압했고, '공작정치'의 원조격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정부가 김 전 총리 서거 후 무궁화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하튼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고 정치계에서 활약한지 60여년 만에 김 전 총리는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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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4 [21:40]  최종편집: ⓒ NBS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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