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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통하여 더욱 부각되는, 내면의 잠재된 폭력성
[NBS 영화세상] 확실히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허구일 수도 있는 ‘파이트 클럽’
 
천상욱 기자 기사입력  2016/10/23 [14:02]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은 공허한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고 싶은 남자 잭(에드워드 노튼 분)이 거부할 수 없는 거친 매력의 남자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을 우연히 만나면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이야기이다.

    

확신하여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허구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반전과 함께 감독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영화 곳곳에서 전달하고 있다. 1999년에 개봉하고 27년만에 재개봉하는 <파이트 클럽>은 폭력이라는 외면과 함께 인간 내면의 고통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작품이다.

    

    

마치 게임 영상인 듯한 시작, 타임슬립은 아니지만 시간이동의 느낌을 주는 연출

    

<파이트 클럽>은 강렬한 사운드로 시작한다. 마치 게임 영상인 듯한 연출이 초반부에 눈에 띄는데, 게임 영상이 고도로 발달된 요즘과는 달리 처음 개봉한 당시에는 새로운 시도의 정말 놀랄만한 영상으로 관객들의 시야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 <파이트 클럽> 스틸사진     © 팝엔터테인먼트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은 타입슬립은 아니지만 시간이동의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런 이미지적인 느낌을 포함시켰다는 것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소급해서 깨달을 수 있다.

    

베일에 쌓인 의문의 여인 말라 싱어(헬레나 본햄 카터 분)가 주는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느낌은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영상이 주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욱 부각시키도 한다.

    

    

지금 나의 고통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

    

<파이트 클럽>은 지금 나의 고통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라는 화두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잭은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거짓으로 아픈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겪고 나서 드디어 제대로 현실을 자각한다.

 

▲ <파이트 클럽> 스틸사진     © 팝엔터테인먼트

    

남의 불행을 통하여 자신이 위안을 얻겠다는 잭의 모습에 관객들은 무척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잭은 한쪽의 캐릭터가 강화된 인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잭과 같은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해준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실제생활에서는 의외로 많다. 문병와서 아픈 사람 앞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 앞에서, 좌절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위로하는 것처럼 하면서 상처를 주는 경우는 많다.

 

▲ <파이트 클럽> 스틸사진     © 팝엔터테인먼트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나은 상황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인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면서, 자신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기적인 자기 위안의 방법이기도 하다.

    

낯선자의 지나친 솔직함에 눈물을 흘리는 잭은 내면을 표현하는 내레이션을 통하여 관객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잭은 약자인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강자인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바라본 인간 내면의 잔인한 이기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반전을 통하여 더욱 부각되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

    

<파이트 클럽>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다루고 있다. 폭력성의 표출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소속감일까 아니면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악함의 해소일까? 때리기를 원하는 것인가? 맞기를 원하는 것인가?

 

▲ <파이트 클럽> 스틸사진     © 팝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사람들이 격투기에 흥분하는 이유를 <파이트 클럽>은 잘 활용하고 있다. 히스테릭한 함성 속에서, 싸우기 전과 싸운 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집단광기와 중독, 폭력에 대한 중독, 집단 췌면으로 인한 무뎌짐으로도 보인다.

    

<파이트 클럽>은 반전 후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영화에 반전만 있으면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었고 반전이 없으면 매력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에 요즘은 반전이 배신이라고 느끼는 관객도 많아졌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 <파이트 클럽> 스틸사진     © 팝엔터테인먼트

    

반전 후에는 두 가지로 모두 해석할 수 있어야 관객들은 반전을 좋아한다. 반전 전의 이야기와 반전 후에 다시 소급하여 처음부터 되돌아본 이야기, 두 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살아있어야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반전이 있은 후, 그 전의 이야기가 단순히 관객을 속이기 위한 트릭이었다고 느껴지는 순간, 감정이입하고 있었더라도 관객은 영화에서 바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반전이 매력을 주는게 아니라 몰입하였던 감정선을 끊어버리거나 심지어는 부정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전을 통하여 더욱 부각되는 인간 내면의 잠재된 폭력성이 돋보이는 것은 <파이트 클럽>이 가진 스토리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재개봉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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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23 [14:02]  최종편집: ⓒ NBS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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