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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듬뿍 든 '골목 순대국'에 퍽퍽한 삶 녹여봐요
[임동현의 돋보기 졸보기] 종로 낙원상가 골목의 순대국은 하루 종일 끓는다
 
임동현 기자 기사입력  2015/06/17 [17:50]
【NBS 국민방송=임동현 기자】메르스 이야기로, 시국 이야기로 요즘 사람들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지하철과 버스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많고 기침만 해도 '메르스 아냐?'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오곤 합니다. 이래저래 팍팍합니다. 가뜩이나 팍팍한 현실인데 사람들과의 관계도 팍팍해지면 참 그렇지요.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기에 한끼를 먹는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아마 요즘 '쿡방'이 뜨는 것도 바로 그 욕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로그나 까페에 맛집을 소개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하도 맛집에 속은 이들의 이야기가 많다보니 이제는 아예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만족을 추구하고픈 욕망이 더 많아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큼직한 돼지고기가 엄청 들어간 종로 순대국입니다     ©NBS 국민방송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힐링'도 이제 '배부른 소리'가 됐다고. 이제 '리빙', 산다는 것 자체가 화두가 됐다는 겁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지금, 이럴 때일수록 뭔가가 그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 그리움의 실체가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아니, 굳이 실체를 알고 싶지 않죠. 그저 '그리움' 자체가 좋으니까요.

뉘엿뉘엿 해가 져가던 어느 날, 종로 골목을 걸어갑니다. 낙원상가 골목을 지나가면 순대국과 머릿고기,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냥 지나가려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붙잡습니다.

"여기 들렀다가, 한 그릇 먹고 가요, 자리 있으니까".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지만 최근엔 발길이 닿지 않던 순대국집. 하지만 할머니의 친근한 꼬임(?)에 저는 결국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그저 그리움만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지요.

▲ 소주까지 한상이 차려졌습니다. 이렇게 먹는데 도합 7천원     ©임동현 기자

김치와 양파, 고추와 된장 등 반찬이 나오고 순대국이 나왔습니다. 종로 골목 순대국의 특징은 순대보다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가있다는 겁니다. 고기도 얄팍하게 썬 것이 아니라 큼직큼직 썰어서 내놓습니다. 말 그대로 돼지고기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 시원한 국입니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국물을 먹으니 시원합니다. 돼지의 비린 냄새도 없습니다. 구수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고기가 잔뜩 든 순대국의 가격은 4천원입니다. 소주 한병을 시키면 7천원, 7천원에 술상이 걸게 차려집니다.

▲ 세상에, 서비스로 큼직하게 썬 돼지 간과 허파가 나왔습니다     © 임동현 기자

종로 골목하면 우리는 노인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실제로 이 곳 식당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이유도 이분들이 주고객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곳을 노인들만 찾는다는 생각은 정말 오산입니다. 가격이 싸고 맛있다보니 젊은 샐러리맨이나 청년들도 이 곳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하지요.

특히 이 순대국집은 젊은 손님들이 특히 많이 다녀갑니다. 바로 옆이 낙원상가이기 때문이죠. 음악만을 꿈으로 안고 있는 이들이 적은 돈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국밥과 술을 찾게 됩니다. 사람이 많으면 노인과 젊은이가 합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묘하게 어우러짐이 생기는 곳이 바로 이 순대국집입니다.

반찬과 함께 주는 삶은 돼지간과 허파의 맛을 느끼고 소주를 마시다보니 어느새 그릇이 비어져갑니다. 여기서 나와줘야 하는 게 있죠, 바로 '맛있는 국밥에 대한 최대의 예의'. 그렇습니다. "사장님, 이 집 국밥 맛있어요"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요. 최고의 예의는 바로 국물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뚝배기를 보여주는 것이랍니다.

▲ 이것이 바로 맛있는 국밥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랍니다     © 임동현 기자

퍽퍽한 삶 속에서 무언가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물론 요즘같이 더운 날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는 게 끌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지는 해를 바라보다보면 차가운 음식보다는 뭔가 따뜻한 무엇인가가 필요해지기 마련이죠. 넉넉함이 담긴 순대국을 먹으며 또 한 번 삶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면 하루가 분명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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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17 [17:50]  최종편집: ⓒ NBS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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